
[환경포커스=예산] 화학사고 예방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첫 시범사업이 충남 예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화학사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기존의 시설 중심 안전관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작업자의 안전행동을 강화하는 '화학사고 인명피해 저감방안'을 현장에 처음 적용하고 그 효과를 검증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이번 사업은 화학사고 자체를 줄이는 것을 넘어 사고 발생 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3년간 발생한 화학사고를 분석한 결과 전체 사고 가운데 절반 이상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사고 원인의 약 88%는 시설 결함보다 작업자의 안전수칙 미준수와 작업 절차 미흡 등 인적 요인으로 분석됐다. 이는 법과 제도가 일정 수준 마련되어 있음에도 현장에서 안전수칙이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는 것이 인명피해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정부는 여수·서산·구미·울산 등 주요 산업단지 사업장의 의견을 수렴해 작업자가 위험을 반복적으로 인식하고 안전수칙을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현장 중심의 저감방안을 마련했다. 단순히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작업환경에서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새로운 접근이다.
이번 시범사업이 적용된 바이켐㈜에서는 사업장 곳곳에서 이러한 변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작업장 입구에는 보호장구 착용을 안내하는 음성안내장치가 설치됐고, 인화성 물질을 취급하는 구역에는 정전기 방전패드와 접지 확인 태그가 배치됐다. 또한 화학안전구역 지정과 사고사례 포스터, 위험안내 표지 등 시각자료를 통해 작업자가 위험요인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시설투어 과정에서는 제조시설과 하역시설, 저장시설 등 주요 공정마다 위험요인에 맞는 안전장치가 적용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정전기 방전패드는 인화성 유기용제를 취급하는 작업자가 작업 전 반드시 접촉하도록 설치돼 정전기로 인한 점화 가능성을 줄이고, 음성안내장치는 보호장구 착용과 밀폐공간 위험요인을 반복적으로 안내함으로써 작업자의 부주의를 예방하도록 설계됐다. 사고사례를 활용한 시각자료 역시 안전수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해 안전문화 확산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대책은 실제 화학사고 사례 분석을 바탕으로 마련됐다. 2023년 충남의 한 사업장에서는 톨루엔 증기가 누출된 상태에서 점화원 관리가 미흡해 폭발이 발생하면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고, 다른 사업장에서도 정전기와 접지관리 미흡으로 인한 화재와 폭발사고가 반복됐다. 정부는 이 같은 사고를 분석해 작업자의 행동 개선이 인명피해 저감의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눈에 띄는 점은 사업 규모에 비해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바이켐 시범사업에는 음성안내장치와 정전기 방전패드, 화학안전구역 표시, 사고사례 시각자료 등을 설치하는 데 약 146만 원이 투입됐다. 대규모 설비를 교체하지 않고도 작업자의 안전의식을 높이고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저비용·고효율 모델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업장으로의 확산 가능성도 주목된다.
사업장 관계자 역시 이번 지원을 통해 작업자의 경험에만 의존하던 안전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위험요인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작업문화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현장에서는 화학안전구역과 사고사례 포스터, 음성안내장치 등이 언어의 한계를 넘어 위험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지원을 받지 않은 다른 구역에도 안전장치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번 시범사업은 무엇보다 화학안전 정책의 중심을 시설에서 사람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고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지만, 현장에서 안전수칙을 반복적으로 실천하도록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인명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모델이 현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 화학사업장은 노후시설 개선이나 안전장치 설치에 필요한 투자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정부도 내년부터 노후 취급시설 개선사업과 연계해 화재·폭발 위험이 높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지원을 확대하고 우수사례를 확산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번 바이켐 시범사업은 화학사고 인명피해 저감을 위한 첫 현장 적용 사례로서, 안전시설을 늘리는 것을 넘어 작업자의 안전문화와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정책 모델을 제시했다. 향후 중소 화학사업장까지 지원이 확대된다면 산업현장의 화학안전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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